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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든다

KF-22 2016. 5. 25. 11:05



[
칼럼]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든다

 

금시초문. 으잉~~~
무슨 이야기야! 뭐라고?
기가 막혀?
, 할 말이 없다. 없어...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해.

이런 황당한 경험은 살면서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일일 것이다. 피하여 갈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아니, 한 쪽을 자기 마음대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억지에서 생기는 일일 수 있다. 다시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보면 상대방이 왜? 나한 테 이러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말하는 것은 아예 듣지도 않고, 내 방식대로 하니까 따라와.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내 편이 아니야! 하는 감정이 일어날 때 사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넘어선 분노하는 감정이 표출되게 된다. 이럴 때 일어나는 분노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감정 보다 본질인 사실에 충실하면 풀 수 있는 길이 그제서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을 넘어선 서운한 감정이 지속되면 사실 그 일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오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돼?”.
여기까지 하고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정리가 된다.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바라보고,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리고, 일이 다 된 후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 소위 손 하나 까닥 않고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경우다. 곰이 재주를 부리고 왕 서방이 챙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곰은 곰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커가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당할 때다.
타인이 나의 노력의 성과를 자기 것으로 삼고, 적반하장으로 공격을 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심히 대하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해답이 있다. 때로는 예수님이 하신 처세법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예수님이 선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죽이려고 했다. 거기에 정면으로 맞받아치지 않고 잠시 피하였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한 그 말씀이다. 같이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하였다가 인도를 받는 것이 선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소통하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처리해 놓으려는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분노를 참고, 용광로 속을 통과하는 시간이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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